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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부동산리뷰

“나대지였을 때가 좋은 거야”

[부동산만화경]나대지였을 때가 좋은 거야





살아가는 곳에 따라 생각의 틀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생각의 틀에 따라 말의 표현도 제각각입니다. 거친 생활을 하면 거친 말투가 입에 익고, 우리말을 공부하다보면 흔히 쓰는 외래어가 낯설기도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말투는 귀에 거슬릴 때도 있습니다. 


“이빨 닦고 올게” 

“교양 없게 이빨이 뭐니?” 

“이빨이 어때서?” 

“짐승의 치아를 이빨이라고 하는 거야.” 

“이 닦고 온다. 이가 아프다가 맞아.” 


이빨이라는 말이 교양 없다는 지적을 들은 다음부터는 누군가 흔히 ‘이빨’이라는 표현을 쓰면 귀에 거슬립니다. 그렇다고 친하지도 않은데 나서서 ‘이빨이 아니라 이가 맞아요’라고 말할 오지랖은 없습니다. 그냥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사실 이빨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데도 그렇습니다. 


군대에서의 일입니다. 부서장이 모처럼 여유롭게 바둑을 두고 있습니다. 청소를 하면서 바둑판을 기웃거립니다. 대마불사라지만 아슬아슬한 형국입니다. 패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상황입니다. 중원의 대마가 잡히는 순간 부서장이 말을 합니다. 


“이거 완전 연병장이구만.” 

“허허. 연병장보다 넓구먼 그려.” 


사석을 골라내던 다른 부서의 과장이 대꾸합니다. ‘연병장’이라는 단어가 이등병의 귀에는 어찌 그리 낯설게 들리는 지요. 보통 넓은 공간을 대유법으로 표현할 때 ‘운동장’이라는 단어를 많이 씁니다. 운동장처럼 넓다. 운동장처럼 탁 트였다. 허나 군 생활을 20년 가까이 한 사람들이 떠올리는 넓은 공간은 ‘운동장’이 아니었습니다. ‘연병장’이었습니다. 


“책을 쓰려고 부지런히 정리한 글이 완성됐어요.” 

“책을 낸다고 능수는 아니네.” 

“그래도 열심히 썼는데요.” 

“책을 내서 외려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는 법이네.” 

“그래도. 애써 썼는데….” 

“모름지기 땅은 나대지일 때가 빛나는 법이야.” 

“나대지는 무궁한 발전가능성이 있네.” 

“하지만 건물이 들어서면 그 건물이 모든 걸 말하지.” 

“좀 더 기다리고 숙성하는 게 옳겠네.” 


부동산 만화경은 책으로 엮기 위한 목적도 있는데요. 쓰는 동안 사람들과 소통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습니다. 몇 달간 밤잠 설쳐가며 생각들을 글에 담은 결과 작은 책 하나 분량이 되었지요. 그래서 사장님께 책에 대한 생각을 전했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이 ‘나대지일 때가 빛나는 법’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정제되지 않은 재능이나 기회를 ‘보석의 원석’이라는 단어로 비유하곤 합니다. 하지만 부동산업계에 30년가량 몸 담아온 사장님은 ‘원석’이라는 표현보다는 ‘나대지’라는 단어를 택했습니다. 이등병 시절 부서장이 바둑 두면서 했던 ‘연병장’과 같은 신선한 충격을 받네요. 


법학을 공부할 때, 리갈 마인드(Legal mind)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습니다. 상식이 아닌 법률의 관점에서 케이스를 대해야 한다는 건데요. 리갈 마인드라는 게 우스운 것 같으면서도 이런 훈련이 된 친구들과 설렁설렁 대수롭지 않게 넘긴 친구들의 학업 성취도는 확연히 차이를 보였습니다. 


부동산업계에서도 프로퍼티 마인드(Property mind) 또는 리얼에스테이트 마인드(Realestate mind) 정도쯤 되는 무언가 자연스레 가슴에 심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동산을 재테크 목적으로 대하든, 원리를 탐구하고자 다가서든, 직업으로 삼든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 부동산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원석’이라는 단어보다 ‘나대지’라는 표현이 더 익숙해지는 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부동산을 말하지만 좀 더 말랑말랑한 게 좋은 아무르군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참을 수 없는 것은 병인가 봅니다. 


KBS의 인기프로그램 개그콘서트 코너 중 선생 ‘김봉투’에서 나오는 100원만 버전입니다. “나대지 마라~. 나대지일 때가 빛나는 법이다.” 


/글=디엠지미디어 이자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