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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부동산리뷰

온 국민의 지적유희...부동산 전망



부동산 만화경



1980년 대 후반. 서울 대방동의 한 중학교 교실의 풍경인데요. “호샨마, 니샨마, 샬라샬라.” 까까머리 중학생이 중국무술에 나오는 무림고수 시늉을 내고 있습니다. 그냥 학처럼 팔을 쭉 뻗고 외발로 비틀거리며 서 있는 동작만으론 부족했는지, 말도 안 되는 중국말 흉내까지 냅니다. 은근 중독성 있어서 많은 친구들이 중얼거렸지요. “호샨마, 니샨마, 샬라샬라.” 


그러다 옆에 있는 친구를 한 마리 학이 잡아채듯이 폴짝 뛰어 살짝 때리네요. “따거.” 한 대 맞은 녀석이 화내기는커녕, 두 손을 모아서는 무릎까지 꿇고는 ‘따거’를 외칩니다. 그렇게 놀아주는 게 그 또래 사내들의 의리였는지도 모르겠군요. 쉬는 시간 10분 우당탕탕 하는 와중에도 수학문제와 씨름하는 녀석, 도시락 까먹는 녀석 별별 친구들이 다 있지요. 


하지만 수학문제 풀다가도, 도시락 까먹다가도 ‘왕조현’ 얘기만 나오면 다들 귀가 쫑긋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물론 하희라, 이미연 등 매력적인 한국 연예인도 있었지만 적어도 대방동의 그 중학교에서는 왕조현이 단연 대세였죠.(제 주변 친구들에게만 국한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요즘으로 치면 아이유 정도? 


대세 왕조현이다 보니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사내아이들의 논쟁거리였습니다. 이국만리 스타의 일상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허구에 대한 탐구였을지도 모르네요. 주변 녀석들에게는 일종의 지적유희였습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요. 정작 본인도 모를 루머성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왕조현의 신화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왕조현이 장국영을 좋아한다더라.” “아니다. 왕조현의 키가 더 큰데 어울리지 않는다.” 같이 확인키도 힘든 주장을 강요하는 지적유희인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왕조현 신화의 종결자가 됐네요.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인데요. 여느 때처럼 책받침에 그려진 왕조현 사진을 보면서, 왕조현에 대해 그간 수집한 정보(일종의 루머)를 나누며 그녀를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녀석들이 이야기가 ‘다~뻥!’같은데, 뭐 증명할 길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질렀지요. “지난 겨울방학 때, 아빠랑 홍콩 갔는데. 왕조현을 식당에서 봤다. 식당에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곤 하더라.” 나름 진실한 표정으로 비장한 톤으로 말이죠. 


순간 정적. 잠시 뒤 반응은 “에이, 뻥 치지 마.” 수많은 거짓 신화로 말을 만들던 녀석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힙니다. 그래도 지지 않았죠. 진짜다. 아빠랑 같이 가서 봤다. 패티김 디너쇼 같은 곳이었다. 왕조현 정말 예쁘더라. 뭐 이런 식으로 TV에서 봤던 패티김 디너쇼를 연상하면서 막 우겨댔죠. 홍콩에 가볼 길이 없던 녀석들 입장에선 갔다 왔다는데 뭐 어쩌겠어요? 그렇게 왕조현 권위자가 됐지요. 왕조현에 대한 종결자의 논평은 언제나 바이블이 되곤 했습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 부동산업계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지인들이 “앞으로 부동산 시장 어떨 것 같아?”는 질문을 종종 듣는데요.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난 모르지. 그냥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를 전달하는 역할만 할 뿐인데.”라고요. 비겁한 대처 같지만 최선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유는 ‘부동산’이라는 게 20여 년 전 대방동의 한 중학교에서의 ‘왕조현’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동산에 대해 일각연이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관심이 지대하기 때문에 각자의 철학이 있고, 각자의 ‘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가설은 대학 동문회 같은 데 가면 쉽게 확인됩니다. 


“그동안 모은 돈에 부모님 지원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뭐 돈이 많지는 않고….” 비교적 유복한 동창 녀석이 겸양 겸 자랑 겸 말을 꺼냅니다. 각자의 직장 이야기로 들썩이던 이야기판은 어느 새 부동산 컨설팅 판이 되는 게 보통이지요. 온 국민의 지적유희, 부동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부동산 시대는 갔어. 주식도 직접 투자는 위험하니까. 펀드에 가입해. 보험 쪽 상품도 알아보고.” “아냐. 저번에 나 펀드에 넣었다가 20% 마이너스 났었잖아. 펀드도 위험해.” “그래도 부동산 아니겠어? 땅이 없어지겠어?” “우리 집 주인 전셋값 5000만원이나 올려달라더라. 2년에 5000만원 어떻게 모으냐. 그래도 집은 있어야겠더라.” “대출 끼고 집 샀다가 금리 오르면 너 큰 고생한다. 잘 생각해라. 외국처럼 우리나라도 집이 소유가 아닌 거주개념으로 바뀌고 있어” “그래도 2년 마다 이사하려니 귀찮고, 애들 학교문제도 있고, 비용도 만만찮고….” 


모두 맞는 말 같지만 모두가 그 실체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는 이야기들인데요. 얘기를 꺼낸 녀석은 담배만 뻐끔뻐끔 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거 왕조현의 종결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머릿속으로 그림만 그려봅니다. ‘가만있어 보자. 저 녀석 연봉이 4500만원이고, 한 달에 가처분 소득이 200만 원 정도인데…. 요즘 금리가 2.5%정도하고…전셋값 상승률이….’ 술자리서 그것도 머릿속으로 계산하려니 답을 못 구하겠네요. 녀석 투자성향이 공격적인지, 보수적인지도 모르겠고. 


그러던 차에 질문이 돌아옵니다. “인마, 네가 그래도 부동산 쪽에 있잖아. 뭐 말 좀 해봐.” 설왕설래하던 중 누군가 질문을 던지네요. 대답은 역시 한 가집니다. “난 모르지. 그냥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를 전달하는 역할만 할 뿐인데.” 


부동산은 주식, 펀드, 채권, 선물, 옵션 같이 일상생활에서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전 국민이 관심을 보이고, 전 국민이 아는 만큼, 전 국민이 즐기는 지적유희의 대상인 것 같네요. 부동산의 가치는 그것만으로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요? 다만, 예전 왕조현의 종결자 같은 부동산의 종결자가 나오진 않기를 바랍니다. 


/디엠지미디어 이자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