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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부동산리뷰

삼성역에서 본 아가씨 때문

2호선 삼성역서 본 아가씨의 핸드폰 때문에 



이번 글은 제목부터 고민입니다. 소소한 거지만 두 가지나 마음에 걸렸는데요. 하나는 특정 브랜드명을 고스란히 써도 되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얘깃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다보니 이것저것 따질 게 많아져서입니다. 고심 끝이라기보다 결단의 산물로 ‘2호선 삼성역서 본 아가씨의 핸드폰 때문에’라는 제목으로 낙점했는데요. 전혀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연상시키지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제목이 섹시하지도 않지요. 


하지만 별 수 없습니다. 더 좋은 제목을 떠올릴 수가 없어요. 제목 후보군에 있던 녀석들인데요. ‘엉뚱한 나만의 명품론과 명품아파트에 대한 아쉬움’ ‘래미안, 넌 왜 스타벅스처럼 못하니?’ ‘왜 BMW지갑은 있는데 자이(Xi)지갑은 없나?’ 등등 이었습니다. 어떤 제목은 브랜드 홍보하는 것처럼 보여서 탈락, 어떤 것은 된장남 느낌이 강해서 포기했네요. 


제목 얘긴 여기까지. 2호선 삼성역서 본 아가씨의 핸드폰이 어땠기에 글을 쓰려할까요? 예리한 분들이라면 탈락된 제목들을 보면서 뭔가 연상하셨을 텐데요. 네. 맞습니다. 명품브랜드 아파트의 아쉬운 브랜드 활용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덜컹. 덜컹. 서울 지하철 2호선 외선순환열차를 타고 삼성역을 지나던 길이었습니다. 당산역부터 시작한 긴 여정 덕에 자리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지요. 지하철에서 보니 의외로 명품브랜드인 펜디, 구찌, 뤼비통 가방을 든 사람들이 많던데요. 


요즘 필이 꽂힌 오쿠다 히테오의 책을 뚫어지게 읽고 있었습니다. 후훗. 웃기는 작가의 글 솜씨 탓에 집중력을 잃었고, 주위가 눈에 들어왔죠. 늘씬한 각선미는 아니지만 오동통하니 예쁜 다리의 아가씨 한 명이 서 있습니다. 단아하고 고상해 보였지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뭔가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삼성역에 도착하자 몸을 돌려 나가네요. 순간 휴대전화 악서사리가 눈길을 끕니다. 휴대전화 고리에 래미안 로고가 새겨진 공동현관 출입키가 달려있는 겁니다. 래미안에 살아요~. 라는 부러움을 자극하는 광고카피로 유명한 국내 최고 수준의 아파트 브랜드인데요. 그 브랜드 아파트를 입주하면 하나씩 주는 일종의 보급품일 것입니다. 


‘젊은 아가씨가 비싼 동네, 고급 아파트에 사네. 왠지 부티가 나는 것 같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드네요. 뭐 속물처럼 보일지 몰라도 자연스런 반응이었습니다. 명품가방을 들지 않았는데도, 고급신발을 신지 않았는데요. 


핸드폰 고리에 달린 브랜드만 보고서 럭셔리한 인상을 받는다는 게 놀랍네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의문. ‘건설사들은 왜 브랜드를 명품이라고 강조하며 엄청난 광고비를 써 키운 브랜드를 다양하게 활용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벅스만 봐도 커피 외에 머그컵, 다이어리까지 메두사머리처럼 생긴 로고를 새겨서 파는데 말이죠. 던킨도너츠는 목도리, 장갑, 가방까지 브랜드화해서 팔잖아요. 롯데캐슬 다이어리, 래미안 머그컵을 만들어서 팔면 어떨까요? 


자동차를 보면 애프터 마켓(After Market)이라는 시장까지 형성돼 있습니다. BMW를 타는 사람들이 출고당시 준 키홀더가 아닌 좀 더 고급스런 제품으로 바꾸기도 하는데요. 폭스바겐 타는 사람들은 티셔츠 공동구매해서 입고 다니고요. 


자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자이로고가 새겨진 다이어리를 사서 쓰려하지 않을까요? 물론 개인취향일지도 모르겠고 괜한 허세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차도 커피도 다 그런데 아파트만 아니라고 말하긴 좀….


그렇다면 명품, 그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명품, 잘 만들어 품질이 뛰어나죠. 그 이상의 가치도 추구하잖아요. 명성과 품격. 이런 것들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마음 속 허영이라는 허전한 곳을 채워주는 독특한 기능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특별한 역할답게 값이 만만치 않다는 건데요. 수입이 변변찮은 편이라 명품을 지르는 게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때문에 다소 엉뚱한 명품론을 설파하고 다니는데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근사한 콘셉트를 구축, 쿨한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엉뚱한 명품론의 핵심은 콘셉트인데요. 커피와 자동차를 사랑하는 취향을 평소 틈날 때마다 주변에 각인시킵니다. 커피마니아란 평을 듣겠지요. 그리곤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자연스레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꺼내 놓습니다. 


명품 구찌로고가 새겨진 프랭클린 다이어리 부럽지 않습니다. 1만7000원짜리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제겐 10만원 훌쩍 넘는 명품 다이어리 못지않은 게 되는 셈이니까요. 그렇다면 1만7000원짜리 래미안 다이어리는 어떨까요? 판단은 여러분 몫. 


실은 어제 이 생각을 몇몇과 나누었습니다. 오~하다가 음~하고 끝났어요. 기발하다고 생각했는데 먹히지 않자 풀이 죽네요. “오~. 그거 기발한데.” “근데 수 억 원짜리 아파트 파는 사람들이 몇 천원 벌려고 그런 품값을 들이려 하겠어?” “푸르지오 사는 사람은 래미안 다이어리 안 쓸 건데” 


그래도 명품 아파트 브랜드 광고하는데 막대한 돈을 쓰는데, 머그컵, 다이어리, 가죽지갑, 벨트, T셔츠, 양말, 장갑, 열쇠고리 정도는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그게 있어야 엉뚱한 명품족의 지갑이 견뎌낼 텐데 말이지요. 


덧, 커피빈 매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입는 그 갈색 카디건 정말 멋있던데. 그건 왜 안 팔아요? 


/글=디엠지미디어 이자량